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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음식

초초간단 고추 삭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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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 꽤 쌀쌀하다. 눈 빠지도록 기다렸던 가을은 오자마자 갈 채비를 서두른다. 갈 길이  무에 그리 바쁜가? 붙잡아도 소용없고 붙잡을 방법도, 명분도 없지만 갈 길을 서두르는 가을이 못내 아쉽다. 들녘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고 올해 無限하게 내주기만 했던 텃밭의 작물들도 서서히 갈 채비를 서두르며 有限의 진리를 깨우치게 한다. 올해의 텃밭 작물 중 효자노릇 톡톡히 한 아삭이 고추를 삭혔다. 이렇게 저장하여 겨울까지, 아니 내년에 다시 텃밭에 오기 전까지 먹을 수 있다면 아삭이 고추의 생명은 연장되는 것일까?

 

남은 고추를 오래 보관하기 위하여 고추를 삭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소금물을 끓여서 부어주는 것이다. 내 어머니 세대에서 했던 전통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끓이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하여 끓이지 않고 삭히는 방법을 택했다. 과정이 간단하고 보관도 용이하다. 

 

<만드는 법>

1. 고추를 손질한다. 깨끗하게 씻은 후 고추꼭지는 남겨둔 채로 짧게 잘라 정리한다. 포크를 이용하여 고추 중간중간 구멍을 내도 되지만 그것도 번거로워서 가위로 고추 끝부분을 잘랐다. 소금물이 잘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2. 생수 1리터, 식초 한 컵, 소주 한 컵, 소금 반 컵을 섞어준다. 유튜브에서 커닝하여 얻은 황금비율이다. 

3. 1에 2를 부어주고 고추가 뜨지 않게 위에서 눌러주면 끝이다. 물의 양은 고추가 잠길 정도로 자박하게 부어주면 된다. 만일 물이 조금 부족해도 고추에서 물이 나오므로 상관없다. 그들이 곧 물속에 잠길 테니까. 일주일 후 노랗게 옷 갈아입은 고추를 만날 수 있다.

4. 노란 옷을 입은 고추를 간을 제외하고 갖은양념 더하여 무치면 옛 향수 자극하는 전통의 맛이 돌아온다. 아! 개운한 맛!

5. 남은 아이들은 냉장보관한다. 냉장보관이 여의치 않으면 물을 따라내어 끓인 후 식혀서 다시 부어주면 된다.

 

 

노랗게 삭은 고추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지나간 시간들이 생각이 난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에 대해서 말이다. 지나고 보니 내가 나 스스로를 너무 쪼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 스스로를 다그쳤던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많아도 되는 순간들도 있었는데!!. 돌아보니 참 수고했다. 나 참으로 수고 많았다. 그래서 요즘이 참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꼭 해야 할 일들이 없는 요즘이 참 좋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는 요즘이 참 좋다.

 

고추 하나에 이렇게 센티멘탈해 지다니! 나 가을 타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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